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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이야기

유란시아서 - 히브리 역사 I

히브리 역사 I

HEBREW HISTORY

 

97:9.1 이스라엘은 12개의 부족이 된 적이 없었다.─팔레스타인에 정착한 부족은 셋 또는 넷에 불과하였다. 히브리 국가는 소위 이스라엘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연합한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가나안 사람들 속에서 거주하였다. 그리고 그들(이스라엘자손들)은 그들의 딸들을 자기들의 아내로 맞이하였고 자기들의 딸들을 가나안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시집보냈다.”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밖으로 쫓아낸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들에 대한 사제들의 기록은 자기들이 그렇게 하였다고 서슴없이 주장하였다.

* 히브리 국가 = 이스라엘 자손들 + 가나안 사람들

 

97:9.2 이스라엘인의 의식(意識)은 에브라임이라는 고산지대에서 기원되었으며 후대의 유대인 의식은 유다라는 남부의 씨족에서 유래되었다. 유대인(유다 사람들)은 항상 북부의 이스라엘 사람들(에브라임 사람들)의 기록을 모욕하고 나쁘게 평가하려고 하였다.

* 고대 이스라엘지도 참고

 

97:9.3 거짓된 히브리 역사는 암몬 족속들이 자기 부족들─길르앗 사람들-요단Jordan의 동쪽─을 침공한 것에 대항하기 위하여 북부의 씨족들을 사울이 소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3,000명 정도의 군사로 적을 무찔렀으며, 이 공로로 그는 고산지 부족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유배된 사제들은 이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사울의 무리를 330,000명으로 부풀렸고 “유다” 족속도 그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덧붙였다.

 

97:9.4 암몬 족속을 무찌른 직후에, 사울은 자기 군사들에 의해 대중적인 방법의 선거로 왕이 되었다. 어떤 사제나 선지자도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제들은 나중에 사울이 신성한 지시에 따라 선지자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기록을 삽입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다윗의 유대 나라 왕위를 “거룩한 혈통”으로 세우려는 의도에서였다.

 

97:9.5 유대 역사 중에서 가장 심한 왜곡은 다윗에 관한 것이었다. 사울이 암몬 족속들을 무찌른 이후에 (그는 야훼에게로 공을 돌렸음) 블레셋사람들Philistines은 무장을 하게 되었고 북부 지방의 씨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다윗과 사울은 결코 화합할 수 없었다. 다윗과 600인은 블레셋 동맹에 가입하였고 에스드랠론Esdraelon 해안선으로 진격해 올라갔다. 가드에 이르자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에게 전쟁터를 떠나라고 명하였는데 그들은 그가 사울에게 동조할 수 있음을 염려하였다. 다윗은 물러났다. 블레셋 사람들이 공격하여 사울을 격퇴시켰다. 다윗이 이스라엘에게 충성하였다면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없었다. 다윗의 무리는 여러 나라의 반항자로 잡다하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의를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었다.

* 암몬 <- 사울(북유다) <- 블레셋 사람들 -> 유다 600인

 

97:9.6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길보아에서 비참하게 패배함으로 말미암아 야훼는 주변의 가나안 사람들의 눈에 하나님들 중에서 가장 낮은 하나님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대개, 사울의 패배는 야훼가 변심한 탓으로 돌려질 수도 있었지만, 이 때 유다 민족 편집자들은 그것을 예식의 실수 탓으로 돌렸다. 그들은 다윗의 왕권을 위하여 사울과 사무엘의 전통을 하나의 배경으로 채택할 필요가 있었다.

 

97:9.7 적은 숫자의 무리를 가진 다윗은 히브리 성읍이 아닌 헤브론에 자기 근거지를 두었다. 이윽고 그의 동료들은 그를 유다의 새 왕국의 왕으로 선포하였다. 유다는 대개 히브리인이 아닌 족속들─겐 족속, 갈렙 족속, 여부스 족속, 그리고 다른 가나안 족속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방랑자들─목축업자들─이었으며 그래서 땅의 소유권에 대한 히브리 관념에 헌신하였다. 그들은 사막의 씨족들이 갖는 관념을 지지하였다.

* 여부스 족속 -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

 

97:9.8 신성한 역사와 세속적인 역사 사이의 차이는 구약 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다윗 왕을 세우는 것과 관련된 두 가지 다른 이야기들에 의해 잘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측근 동료들(그의 무리)이 그를 왕으로 만든 방법이 사제들의 실수로 기록에 남게 되었는데, 그 사제들은 선지자 사무엘이 신성한 지시에 의해 다윗을 그의 형제들 중에서 선택하고 공식적으로 그리고 정교하고도 엄숙한 예식을 고심하여 만듦으로써 그를 히브리인들의 왕으로 기름을 붓고 그 다음에는 그를 사울의 후계자로 선포하는 일을 진행시킨 방법을 묘사한 신성한 역사의 길고도 무미건조한 변명을 나중에 만들어 내었다.

 

97:9.9 사제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기적적인 관계에 대하여 자기들 나름대로 거짓된 이야기를 꾸미면서, 이미 기록에 들어 있는 평범하고도 사실에 관계되는 내용들을 충분히 제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이 있었다.

 

97:9.10 다윗은 처음에는 사울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고 하였으며, 그 다음에는 에돔 사람이며 부자인 나발의 과부와, 그리고 그 다음에는 게쉬르의 왕인 달매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는 힛타이트 족속의 아내인 밧세바 말고도 여부스 족속에서 여섯 명의 아내를 취하였다.

 

97:9.11 그리고 그런 방법으로, 그런 민족으로부터 다윗은 에브라임 사람의 이스라엘 왕국, 사라지는 북부의 왕국의 유산과 전통의 후계자로서 유다라는 신성한 왕국에 대한 허구를 꾸며냈다. 다윗이 거느린 유다라는 다국적 부족은 유대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방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요당한 에브라임의 장로들이 내려와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만들었다.” 군사적인 협박을 가한 후에,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과 조약을 맺었고 연합된 왕국의 수도를 여부스(예루살렘)에 세웠는데, 그곳은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매우 강력한 성벽을 가진 성읍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극을 받아 곧 다윗을 공격하였다. 격심한 전투가 있은 후에 그들은 패배하였고, 야훼는 다시 한 번 “만군의 주 하나님”으로 확립되었다.

 

97:9.12 그러나 다윗 무리 대부분이 히브리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야훼는 어쩔 수 없이 가나안 하나님들과 영광의 일부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하여 너희들이 보는 기록에 (유다의 편집자들이 간과하였던) 비밀을 폭로하는 이러한 말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야훼가 내 앞에서 내 적들을 무찌르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 지방의 이름을 바알-페라짐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다윗 군사의 80퍼센트가 바알을 숭배하였기 때문이었다.

 

97:9.13 다윗은, 사울이 길보아에서 패배한 이유가 가나안 족속의 성읍인 기브온, 에브라임 사람들과 평화 조약을 맺은 그들을 사울이 공격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것 때문에 야훼가 그를 버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사울이 활약하던 시대에도,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에 대항하여 길르앗이라는 가나안의 성읍을 방어하였으며, 그 다음에 그는 자기 수도를 가나안의 성읍에 세웠다. 다윗은 가나안 사람들과 타협하는 정책을 계속 고수하면서 사울의 후손들 일곱 명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내주어 목을 매달게 하였다.

 

97:9.14 블레셋 사람을 무찌른 후에 다윗은 “야훼의 법궤”를 손에 넣게 되어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으며, 자기 왕국의 공식적인 경배로 야훼를 섬기게 하였다. 그 다음에 그는 이웃 부족들─에돔 족속, 모압 족속, 암몬 족속, 그리고 시리아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 야훼의 법궤 - 율법의 근본인 모세의 십계명판이 담긴 궤라고 해서 성궤라고도 부르며, 히브리 민족이 야훼와 맺은 계약의 상징이다. 신이 시나이산 정상에서 모세를 불러 두 번째로 십계명이 새겨진 판을 내려주었고 그와 더불어 신을 숭배하기 위한 용도로 성막(성스러운 천막)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신은 성막을 어떻게 만들지 지시하면서 특별히 성스러운 상자를 만들라고 명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궤이다.[1]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조각목[2] 목재를 금으로 싸서 만들었는데 그 안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판과 대사제장 아론의 싹난 지팡이, 히브리 민족이 피난하면서 먹었다고 하는 식량 만나를 담은 황금 항아리를 넣어두게 했다고 한다. 또한 상자를 덮는 뚜껑[3] 이 있었는데 뚜껑의 위에는 날개 달린 천사 같은 형상[4]을 좌우에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이것의 용도는 천사 같은 형상 사이로 신의 영광이 내려오는 목적이었다고. 이 케루빔은 창세기의 생명나무 실과를 지키는 천사이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명나무 실과를 지키던 불의 칼도 언약궤를 지킨다.

 

 

UrantiaBook [97:9.1~14]

제 97 편 히브리인 사이에서의 하나님의 개념의 진화

    9. 히브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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