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24항의 난해한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아하의 독자들은 공부를 잘해왔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질문들이지만...
누군가 설명을 요청한다면 뭐라고 답변할지 좀 난감할 듯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주와 창조, 신에 관한 질문이 폭주할 것이 예상됩니다.
1. 신(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이 아닌가 ?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변장수의 시대가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
예 ;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7.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을 어떻게
증명할수 있나 ?
9. 종교란 무엇인가 ?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
14. 인간이 죽은 후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
16.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
예 : 폴란드 등 동구제국, 니카라과 등
20.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가 많은데, 사회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
21. 로마 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 왜 독신인가 ?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 왜 독신인가 ?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
24.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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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질문 - 유란시아서를 바탕으로 한 답변 / 들 꽃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그룹의 창업자인 고 이병철(1910-1987) 회장의 비중은 대단히 지대합니다. 그가 20여년 전 지병으로 타계하기 바로 전에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종교에 대한 질문을 어느 천주교 신부에게 건넨 것이 최근에 알려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비록 그러한 질문이 평범한 일반적인 질문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한 시대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닌 종교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내던지며 절실하게 물어온 질문이기에, 그 의미가 대단히 깊습니다.
이 질문을 간접적으로 전하여 받은 천주교의 한 신부가 어느 신문과의 대담에서 이 질문에 대하여 천주교의 기준에서 답변을 한 기사가 언론에 실린 적이 있으며, 그 신부는 이를 보다 깊이 있게 다룬 답변을 단행본으로 만들어 작년 연말에 발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들 질문에 대하여 신문 대담을 읽은 일부 기독교인이 그들의 의견을 피력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유란시아서(The Urantia Book)의 입장은 어떠한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 어떻겠냐는 어느 분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한 명의 독자에 지나지 않는 저가 유란시아서의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겠으나, 다만 이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유란시아서에서 찾아 전달할 수는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제 나름대로 여기에 그 답변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에 바탕을 두고 주관적으로 판단을 하는 성향이 깊으며, 이미 몰두하고 있는 신념과 관념에서 벗어나기는 대단히 어려운 존재입니다. 따라서 자기 앞에 새롭게 주어지는 이론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다른 이론과 주장에 대하여 이해하려는 시도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거부하는 타성이 있음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천적인 질문에 대하여 유란시아서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면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려는 이러한 노력이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이들 주제에 대한 유란시아서의 개념을 정리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한편, 만약 유란시아서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진 분이 이글을 접할 경우 그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 답변을 시도하여 봅니다.
이글에서 인용되는 유란시아서와 관련된 새로운 용어와 개념은 유란시아서 만이 제시하는 특별한 것들로서, 책을 접하여 보지 않은 분들은 그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임을 알기에, 이 점에 대하여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유란시아서의 내용에 대한 이해와 도움을 위하여 글 아래에 관련된 영어 원문을 참고로 싣습니다.
이들 질문에 대한 천주교와 일부 기독교인의 답변은 인터넷에 게재된 내용을 참고로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질문은 인간에 대한 종교적 관점에 대한 것으로서 모두 24 개입니다.
출처] 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질문과 유란시아서 답변 |작성자 들 꽃
http://blog.naver.com/bysmkt/40148578456
( 질문 1 )
神(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
神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내 보이지 않는가 ?
: 질문자가 이 질문에서 말하는 신(神)은 우주를 창조하고, 이를 주관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신이 있다면, 우주가 하나의 통일된 질서 속에 움직이고 있음을 고려하여, 전통 카톨릭과 기독교는 유일신의 개념으로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우리 민족이 전래적으로 옥황상제와 같은 절대자가 “하늘” 어디에 있을 것으로 믿는 사상이, 새로 도입된 기독교와 접촉하지 않은 분들이 주로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질문자는 이 전통적 용어에 익숙하여 '하느님"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기독교 성경에서 언급하는 영어의 God 은 유대교에서 시작하여, 천주교를 거쳐서 기독교까지 이어오면서 추구하는 유일신의 개념으로서, 이 개념은 창조주가 “하늘“에 있다는 개념보다는 오직 한분이라는 개념과 가까움으로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기독교도 하나님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도 신과 하나님으로 함께 사용하겠습니다.
위의 질문은 일단 신이 있다면 왜 자기 자신이 존재함을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느냐는 의문입니다. 이 질문을 다시 되돌리면, 신이 존재하지 않으니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종교인들은 왜 그러한 존재를 비종교인이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증명해 보이지 못하느냐는 추궁입니다. 긴 인류 역사상 신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도 비중이 큰 주제이면서도 이를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처지에서 나온 답답함의 절규로 이해됩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인들은 신은 인간과 다른 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병철 회장의 질문을 언론에 소개한 카톨릭 신부는 그의 답변에서, “우리 눈에는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 가청 영역 밖의 소리는 인간이 못 듣는다. 그러나 가청 영역 밖의 소리에도 음파가 있다.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다. 신의 한계나 신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시각과 청각의 제한 때문에 신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이론입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사유를 인간의 신체적 물리적 제한성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기독교 계통의 한 종교인은, 신은 오직 믿음으로 만 알 수 있으며, 믿는 자에게 신은 절대적 존재로서 그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이 대답에 동의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신을 눈으로 보듯이 그 존재를 증명하여 달라는 질문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려면 신의 존재를, 신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종교인과 신학자들이 이를 설명하여 왔으나, 그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하였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아마 신이란 감각으로 알 수 있는 물리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신의 존재가 증명이 될 수 있다면, 신은 이미 어느 제한된 틀 안에 속하게 됨으로, 절대적인 무한한 신이 될 수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간으로 있는 한 신을 완전히 알지 못할 운명에 처해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의 개념을 가르치는 종교가 존재하여야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신을 눈으로 보듯이 증명하여주지 못함은 유란시아서(The Urantia Book)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만 유란시아서는 지금까지 신을 규정한 그 어느 개념보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를 알 수 있는 길이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에서 설명하는 신의 개념은 너무 방대함으로 이를 여기에 언급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으로 생각되며, 다만 인간이 신을 알 수 있는 길과 관련된 문장만을 몇 개 알아보겠습니다.
( )의 숫자는, 유란시아서의 편, 장, 절을 의미합니다.
( 1:2.4 )
하나님의 존재는 과학적 실험이나 논리적 유추에 의한 순수한 이성으로서는 결코 증명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오직 인간의 경험 안에서만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실체에 대한 진정한 개념은 논리적으로 합당하며, 철학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며, 종교에게는 핵심이며, 개별 성품존재의 생존을 위한 희망에서는 필수불가결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의 존재 사실을 경험한다. 하나님을 아는 그런 사람들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증거를 개인적인 경험으로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도 이를 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는 하나님을 인식하려는 인간의 마음과, 우주의 아버지가 무상의 선물로 인간에게 내려주어 인간 지성과 함께 살고 있는, 하나님이 나타나 계심인 생각 조율자와의 접촉을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그를 보여줄 가능성이 없다.
(5:2.3)
그러나, 신성한 하나님이 나타나 계심은 자연 안의 어느 곳에서도, 또는 심지어 하나님을 알고있는 유한생명의 생활 안에서도, 당신이 파라다이스의 생각 조율자, 인간 안에 함께 살아가는 신비의 관조자와 하는 적극적인 교류에서처럼 그렇게 완전하고 확실하게 발견될 수가 없다. 우주 아버지의 영이 너 자신 마음 안에 살아 계시는데, 멀리 하늘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꿈꾸는 것이란 얼마나 잘못된 실수인가 !
(117:6.9)
인간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장 큰 체험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 다른 경험들은 그 성격이나 내용에 있어서 제한이 되어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생명체가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 이외에는 그 한계가 없으며, 그리고 바로 이러한 체험 그 자체가 체험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찾고 있다. 하나님을 발견하면, 모든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을 추구함은 사랑을 아낌없이 내려줌이며, 새롭고 더 큰 사랑이 주어짐을 놀랍게 발견하게 된다.
( 196:3.21)
하나님은 단지 인간의 이상주의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다.; 그는 동물을 초월한 그러한 모든 통찰과 가치의 바로 그 근원이다. 하나님은 진선미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가설이 아니다.; 그는 사랑의 성품으로서 그로부터 이 우주에 펼쳐지는 모든 현상이 비롯된다. 인간 세상의 진리, 아름다움, 선함은 파라다이스의 실체를 향하여 상승하는 유한생명의 체험이 영적으로 증가함에 따라서 하나로 통일된다. 진선미의 통일은 오직 하나님을 알아가는 성품존재의 영적 체험 안에서 실현될 수 있다.
: 또한 책의 어느 부분에서는 “인간이 가장 높은 실체의 대상인 하나님과의 접촉은 오직 그를 아는, 그를 공경하는, 그의 아들임을 깨닫는 순수한 주관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이 책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유란시아서는, 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노력하면 그를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유란시아서는 특히 인간 개개인에게 그를 영적으로 돕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하나의 조각 편린(fragment)인 생각 조율자(Thought Adjuster)가 인간 안에 주어져 있으므로, 인간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이 조율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와 교류함으로서 신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신을 아는 길은 생각 조율자와의 접속이 유일한 길이며, 그 존재와 접속하려면 먼저 영적인 성장이 우선적인 것으로서, 이를 위하여 물질적으로, 지적으로, 영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여야만 인간이 죽은 후, 다음 세상에서도 계속 생존을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유란시아서가 말하는 생각 조율자와의 접속이란, 기독교에서 언급하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게 여겨집니다. 믿음이란 영성의 성장을 의미하며, 이에 따른 하나님, 즉 생각 조율자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결론적으로, 신이 없다고 판단하는 무신론자들은 영적인 영역을 부인함으로서 영적인 성장을 추구할 이유와 의지가 없을 것이므로, 안타깝게도 신을 체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가장 긍정적인 의미와 가치의 대상인 진선미(truth, goodness, beauty)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에게는, 그 원인과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신을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은 확실히 충분히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역사적으로 인식하여온, 기존 종교적 이론으로 이해하고 있는 그러한 존재가 아닐 것으로 추정합니다. 다만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가장 비슷하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최대의 개념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기 때문에, 가톨릭과 기독교뿐만 아니라 새로운 계시서라는 유란시아서까지도 신을 “하나님 아버지(God the Father)" 또는 “우주의 아버지(Universal Father)"라고 통칭하게 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란, 즉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의미하며, 아버지가 부모의 대표이듯이 아들을 자식의 대표로서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는 부모와 자식이 유전자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특별한 관계가 있듯이, 지적 생명체인 인간은 하나님이 그 원천인 성품이란 특별한 요소를 서로 공유함으로서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고려하여, 부모 자식처럼 서로 사이를 연결하는 유사성을 기준으로 이러한 관계의 용어가 도입된 것으로 판단하면 무난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의 진정한 실체는 인간이 영적인 성장을 하여감에 따라서, 부모 자식 사이의 개념을 넘어서 그 본질에 좀 더 가까운 실체를 점차 이해하여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란시아서의 특징 중 하나가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확대를 위한 설명이 자세히 주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유란시아서는 인간이 영혼의 성장을 위하여 나아가는 길은 무한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고도 먼 여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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