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의 예 - 유란시아서
2011/09/21 08:24
<유란시아서(The Urantia Book)>는 유란시아 재단에서 편찬한 2,300 페이지에 달하는 뉴에이지 기독교 계열의 종교적인 책으로(현재는 저작권 시효가 만기되어 있음),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책은 196편의 논문이 4부로 나누어져 있고 머리말은 40명 이상의 하늘 존재들이 유버르사어, 구원자별어, 예루셈어 등 정체불명의 언어로 기록한 것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라 합니다.
위키피디아에 <유란시아서>가 기술한 내용이 과학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비판 글이 제기되어 있으므로, 저는 여기서 <유란시아서>의 방법론적인 측면들을 위주로 비판하고자 합니다. 제가 볼 때 <유란시아서>는 전형적인 서양인들의 '덜' 발달된 영적 노선을 무분별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1) 권위주의적인 속성
유란시아서는 특이한 점이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라고 하는 개념이 자주 쓰여지는데, 이는 '신=인간'의 뉴에이지적 모델에서 신의 속성에 좀 더 권위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물방울, 신을 대양이라고 보았을 때에, 어떻게 감히 물방울이 대양의 권능과 같냐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잘 것 없는 물방울 한줄기는 자기보다 더 큰 전체, 즉 아버지에게 되돌아감으로서 본능을 회복합니다. 증산도의 교주 강증산도 <천지개벽경>에서 동학의 3대 교주인 손병희에게 신과 인간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고 가르치며 화를 냅니다. 천인감응을 주장했던 동중서는 강증산과 비슷한 입장을 공유하는 걸까요? 감응은 하되, 위계는 다르다.
이렇게 '아버지'라는 개념에 빌붙으면 맘이 실제로 편해집니다. 어쩌면 이것은 더 큰 권위에 의존하는 피동적이고 나약한 예배자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서양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는 바로 하나의 권위적 대상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God)과 삼위 일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없다. 유한자가 무한자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자로 무한한 높이를 재려고 발돋움하는 것이요, 유한한 수를 무한(infinity)으로 나누려 하는 것과 같다.
<유란시아서>는 성경 그대로 각각의 부와 구절에 따라 문구가 나뉘어져 있는데, 이러한 것은 마치 <구약성서>의 권위적인 신의 모습처럼 하나의 인격적인 신이 존재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뉴에이지적으로 생각해보면, 신이 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과 인간의 분리론은, 깨달음은 자기 내부에 존재한다는 영성의 최대 화두를 약화시키며, 신을 외부(특히 <유란시아서>라는 서적)에 있는 대상으로 의인화시키는 위험이 있습니다. B.C. 5세기 경에 활동했던 성인들, 즉 소크라테스, 부처, 예수, 공자 등이 책을 남기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진리가 언어로 왜곡되는 것을 피하고, 그것은 오직 '체험'을 통해 깨달아 질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요?
무엇보다 신의 계시라는 이 책은 2,000페이지나 되는데, 이것을 일일히 전 인류가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의미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인류를 근본적으로 건강하게 할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 백과사전 두께의 책을 읽는 것은 또다시 영성을 '문자화'하고 '철학화'하는 지난 종교사의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는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에 지쳐있습니다. 그래서 신비 기독교, 예수의 참 모습은 우리에게 호기심을 일으키지만, 미래 인류에게 있어 다시금 아버지의 권위에 기대는 성경식 문자주의는 더 이상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구시대의 산물일 뿐입니다. 문자주의는 신의 말씀이란 것을 빌미로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내면의 진리에서 멀어지게합니다.
(2) 비과학적인 속성[채널링의 모호함]
이 책에 나와 있는 방대한 내용들은 모두 채널링(Channeling)이라는 대단히 모호한 기법을 통해 쓰여져 있습니다. 채널링의 실재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설령 실제로 채널링을 통해 "어떤 세계를 보았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집단 무의식에 있는 하나의 섹터(sector)를 본 것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채널링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기법 자체가 굉장히 부정확하고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검증할만한 방법이 거의 없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무신론자들의 좋은 공격먹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채널링의 대가인 에드가 케이시를 비롯하여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채널러들도 검증의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명의 40명의 하늘존재들이 하늘어로 말을 해서, 하나의 진리를 집대성했다는 <유란시아서>는? 정체가 탄로될 만큼 많은 허점들이 있습니다.
우주의 역사만해도, 영성계에서 책들마다 다 설명이 다를 정도로 정확성이 '개판'입니다. 사실 우주의 역사란 것도, 인류의 진보라는 화제에 비하면 그렇게 중요한 내용도 아닙니다. 그런데 유란시아서는 신빙성도 없는 우주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것도 초반부에 장황하게 늘어놓습니다.
1. 거대한 파라다이스 주위에는 거대한 10억 개의 하보나 천체들이 돌고 있으며, 이는 또한 일곱 초우주에 둘러 싸여 있다. 옛적부터 늘 계신 이 (Ancient of Days, 다니엘서 7:9) 세 분이 각 초우주를 주관하고, 각 초우주는 100,000 지역 우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를 다스린다. 우리가 사는 유란시아는 네바돈 지역 우주에서 작은 혹성이다. 이 대우주 바깥에는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외계 우주가 있고, 현재 네 겹의 띠 속에 초우주 등급의 큰 물질 집합체가 70,000개 이상 성장하고 있다.
2. 아들 창조자는 각자 자기의 지역 우주를 지으며 성령(holy spirit)과 함께 그 경영에 필요한 천사들과 기타 아들들을 창조한다. 지역 우주는 1백 별자리(constellation)로, 각 별자리는 1백 체계(system)로, 각 체계는 사람이 살거나 살 구체(球體, sphere) 1천 개와 기타 건축된 구체들로 구성된다.
3. 외톨 사자는 성격이 있고 물질 몸이 없으며 빛의 450만 배 속도로 공간을 진행한다.
4. 네바돈 지역 우주는 오르본톤 초우주의 물질 질량의 십만분의 1이며 여기에는 사람이 사는 별이 1천만 개가 창조되도록 예정되어 있다.
5. 지역 우주에서 활동하는 천사는 대체로 최상 세라핌(seraphim), 우수 세라핌, 감독 세라핌, 행정 조수, 과도기 봉사자, 미래 세라핌의 등급이 있으며 시험과 훈련 과정을 거쳐서 임무에 배치된다.
6. 루시퍼 반란(rebellion)은 약 20만년 전에 일어났고 체계 군주인 루시퍼(계명성, Isaiah 14:12)가 거짓 자유와 완전 자치(自治, home rule)를 부르짖으며 많은 천사와 중도자(中道者)들을 미혹하였다.
'하나만 봐도 전체를 안다' 했듯이, 제가 유란시아서 요약본을 보고 집어치운 것은, 바로 이러한 공허한 묘사들 때문입니다. 전혀 증명도 불가능하고, 비과학적입니다. 다른 대목은 그렇다 치고, 루시퍼가 20만년에 천사와 중도자들을 미혹하였다니, 이건 정말이지 황당합니다. 다음 대목은 더 웃겼습니다.
안드 사람의 한 가지는 동양으로 가서 인도를 정복하고, 아시아에서 황인은 홍인을 아메리카로 몰아내며, 홍인은 거기서 아담의 핏줄과 거의 접촉이 없게 된다. 안드 사람이 중국에 침투하며, 이로서 시간 계산이 메소포타미아와 같게 된다. 황인의 큰 장점은 가족을 중요시하는 성향이며, 단점은 조상 숭배로 말미암아 옛것을 중시하는 철학에 집착하고 이로서 유일신(monotheism) 숭배가 지연되는 것이다.
이건 신의 관점이라기 보다는, 딱 미개한 서양인의 관점을 잘 표현한 게 아닐까요? 유일신 숭배가 지연되었다니, 전형적인 기독교 사상이 아닙니까? 정말 웃깁니다. 신에 대한 고등한 믿음이야, 동양이 서양보다 몇 천만년은 더 오래되었는데 말입니다. 역사에 대한 증명 오류도 이처럼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 시대에만 인간에게 계시를 주셨고 지금은 가만히 계시는가? 하나님은 기원전 1900년 경에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시대에 일하셨고,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구해 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또한 2천년 전에 예수를 보내시어 인류에게 부활과 영생(eternal life)의 희망을 직접 보여 주셨다.
저는 이것이 진정한 채널링을 통해 씌여졌다고 믿지 않습니다. 왜냐면 아브라함은 기원전 1900년대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은 오직 <성경>에만 쓰여진, 다시 말해 신화적인 인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원형이 되는 사람이 존재했을런지는 몰라도, 아브라함 이라는 사람은 역사에 기록된 바가 없습니다. 유태인들은 그 당시 아피루인(Apiru)들로서 떠돌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으로부터 그 뿌리가 전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완전한 가상인물입니다. 이는 <유란시아서>가 진리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반해 있다는 오류를 보여줍니다.
정말 의문인 것은, 왜 그들, 채널러들은 정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너무나도 추상적인 이야기에 집중해서 독자를 설득시켜야만 할까요? 가령 이러한 채널링들은 과거로 갈수록 점점 더 구체한 이야기를 묘사하는 데 반해, 현재로 갈수록 점점 더 비구체적인 이야기를 묘사하는 아이러니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뻔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유란시아의 자유주의 신학박사인 메리디쉬 스프링거(Meredith Springer)는 "유란시아 책에 나오는 모든 과학적 근거들은 실질적으로 책이 쓰인 당시의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라는 것이 조사결과 밝혀졌다. 일부는 당시 일부 과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던 것이었고, 또 어떤 것은 당시 새롭게 발견되거나 인식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는 60여년 전에 쓰여졌던 책으로, 그 시대의 과학과 뉴에이지 사상들을 반영하는 대단히 세속적인 산물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진리'도 섞여있을 수도 있습니다. 1993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캐리 뮬리스(Kary Mullis)는 자신이 저술한 <정신세계에서 추는 춤>에서 자신이 유란시아 책의 내용을 신뢰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그 예입니다. 그는 특히 "2005년 <사이언스지>에 45억 년 전의 지구와 태양계의 기원에 대해 로버트 스톰이 발표된 논문 내용과 유란시아 책의 서술이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고, 또한 2004년과 2005년이 되어서야 발표될 수 있었던 두뇌 유전자 마이크로세팔린을 근저로 한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를 이 책이 이미 상세히 설명한 것은 경이로운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유란시아 책에서 받는 영감은 상당히 많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저의 비판들이 사실이 아니고 중요한 부분들을 놓쳤다면, 건전한 비판을 부탁합니다. 저는 <유란시아서>같이 사이비든 아니든 참신한 책들이 나의 앎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환영인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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